연금계좌 안에서 ETF를 사고팔 때 세금이 바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체감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구조를 활용해 수백억 원대 '슈퍼 퇴직계좌'를 만든 초고액 자산가가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제가 소액으로 경험한 그 혜택이, 다른 규모에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는 걸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과세이연, 소액 투자자도 체감하는 힘
연금계좌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세금 혜택'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세 효과는 자산이 클수록 크게 체감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소액 투자자에게도 그 차이는 생각보다 뚜렷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연금계좌 안에서 해외 주식형 ETF를 매도하고 국내 ETF로 재배치할 때 세금이 즉시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과세이연(Tax Deferral)이란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 납부 시점을 현재가 아닌 미래(인출 시점)로 미루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덕분에 차익 전액을 그대로 다음 투자에 굴릴 수 있었고, 복리 효과가 일반 계좌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달랐습니다.
미국의 개인퇴직계좌(IRA, 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도 같은 원리입니다. IRA란 미국 근로자가 노후 자금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정부가 세제 혜택을 부여한 계좌로, 계좌 안에서 발생하는 배당·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이 즉시 부과되지 않습니다. 401(k)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용주가 일정 금액을 함께 적립해주는 기업 연금 형태입니다. 두 계좌를 합쳐 1억 달러(약 1,463억 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이 약 200명에 달한다는 수치(출처: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같은 제도가 맞나 싶었습니다.
- 과세이연: 수익 실현 시점이 아닌 인출 시점에 과세 → 복리 효과 극대화
- 계좌 내 자산 재배치 시 세금 없이 즉시 재투자 가능
- IRA + 401(k) 합산 1억 달러 이상 보유자 약 200명(2024년 말 기준)
절세전략, 비상장 주식으로 '세금 없는 대박'을 만드는 법
제 연금계좌에는 상장 ETF만 담겨 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미국 IRA는 조건에 따라 비상장기업 주식까지 편입이 가능합니다. 이 지점에서 일반 투자자와 초고액 자산가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블록스(Roblox) 창업자 그레고리 바주키입니다. 그는 로블록스 상장 전, 주당 72센트에 약 200만 주를 IRA에 편입시켰습니다. 이후 주가가 폭등하며 계좌 자산이 최소 6,800만 달러로 불어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차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았습니다. 미국 평균 가정의 IRA 잔액이 약 26만 8,300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평균의 약 253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엔비디아(NVIDIA) 이사 텐치 콕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출신인 그는 IRA 안에 엔비디아와 스노플레이크(Snowflake) 주식을 담아 세제혜택 자산을 약 20억 달러 이상으로 키웠습니다. 계좌 내에서 엔비디아 주식 2억 3,70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는데, 일반 계좌였다면 발생했을 세금 4,000만 달러 이상을 절감한 셈입니다. 여기서 비과세 매각이란 계좌 안에서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그 시점에 양도소득세가 과세되지 않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는 상장 ETF를 매달 적립하며 과세이연의 효과를 체감하고 있지만, 상장 전 스타트업 주식을 극초기에 편입해 수십 배 상승분을 통째로 비과세로 챙기는 구조는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더라도 처음부터 이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노후 자금 마련이라는 IRA 본연의 취지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습니다.
조세형평, 제도가 스스로를 배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제 혜택은 '중산층 이하의 노후 대비를 돕는 장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혜택이 자산 규모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번 사례에서 분명히 목격하게 됩니다. 소액으로 시작한 저조차도 과세이연의 유용함을 체감하는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 이 구조는 사실상 무한 면세 장치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기업 세법 전문가 스티브 로젠탈은 이를 두고 "은퇴 후 필요한 자금을 저축하는 수준이 아니라, 요트를 사거나 부를 대대로 물려주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직격했습니다(출처: 월스트리트저널). 이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2024년 말 기준 IRA 잔액이 2,500만 달러(약 366억 원) 이상인 사람이 1,000명을 넘어섰고, 이 수치가 5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조세형평(Tax Equity)이란 같은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동등한 세금을 부과하고, 능력에 따라 적절히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조세 정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지금의 슈퍼 IRA 구조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합니다. 부유할수록 더 큰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역진적 구조가 제도 안에 내재된 셈입니다.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론 와이든 상원의원과 리처드 닐 하원의원은 연령과 무관하게 IRA 잔액이 1,000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매년 일정 금액을 의무적으로 인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여기서 의무 인출(Required Minimum Distribution, RMD) 규정이란 계좌 안에 자산이 무한정 쌓이지 않도록 일정 연령 또는 조건에 도달했을 때 최소 금액을 강제로 꺼내게 하는 장치로, 그 인출분에는 소득세가 부과됩니다. 이 규정을 고액 계좌에 조기 적용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국 IRA에 비상장 주식을 담는 게 합법인가요?
A. 일반적으로 불법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현행 미국 세법상 자기거래(Self-Dealing) 금지 규정 등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허용됩니다. 다만 이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과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허점을 메우기 위한 입법 논의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Q. 한국 연금계좌도 미국 IRA처럼 비상장 주식을 담을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확인해봤는데, 현재 국내 개인연금(IRP, 연금저축)에는 상장된 국내·해외 ETF 및 일부 펀드만 편입이 가능합니다. 비상장 주식은 담을 수 없어 미국 IRA의 슈퍼계좌 전략은 한국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과세이연 효과 자체는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Q. 의무 인출(RMD) 법안이 통과되면 슈퍼 IRA가 사라지나요?
A. 법안이 통과된다면 일정 부분 억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의무 인출 규정만으로는 계좌 편입 자산의 종류 자체를 제한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상장 주식을 활용한 초기 단계 절세 전략을 원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편입 자산 제한과 같은 추가적인 입법 보완이 함께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과세이연 계좌가 일반 계좌보다 무조건 유리한가요?
A. 일반적으로 무조건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인출 시점의 세율과 운용 기간을 따져봐야 합니다. 장기 투자·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상황에서는 과세이연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하지만 인출 시점에 높은 세율이 적용되거나 단기간만 운용하는 경우에는 일반 계좌 대비 메리트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IRA라는 동일한 제도가 어떤 자산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노후 적립 도구가 되기도 하고, 수백억 원대 비과세 부(富) 증식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매달 ETF를 적립하며 체감하는 과세이연의 효과와, 상장 전 스타트업 주식으로 수천만 달러를 불리는 구조는 같은 법 아래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설계된 제도가 일부 내부자들의 합법적 절세 경로로 굳어지는 현상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연금계좌 제도 역시 지금은 편입 자산이 제한되어 있지만, 앞으로 규제 완화 논의가 이어진다면 같은 방향의 허점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제도가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누구의 노후를 위한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점을, 이번 사례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