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호황이 불러온 사상 최대 '슈퍼 예산' 논의 속에서, 54년간 유지되어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급감과 미래 산업 투자 필요성이 충돌하면서, 국가 재정 배분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구조, 무엇이 문제인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은 1972년 제정된 이래 초·중·고 교육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를 시·도교육청에 자동으로 배분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제도입니다. 내국세란 국세 가운데 관세를 제외한 세금으로,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연동 구조의 핵심은 국회의 매년 심의 없이도 세금이 많이 걷히면 교육 예산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제도가 탄생한 1972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28달러에 불과했고, 학령인구는 1,073만 명을 넘었습니다. 학교를 계속 지어야 했고 지방 교육재정도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경제나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교육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세금이 걷히면 일정 비율은 반드시 교육에 투자하도록 법으로 못 박은 것은 그 시대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올해 학령인구는 492만 명으로, 1972년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교육교부금은 올해 76조 4,381억 원으로 최근 8년 사이 75% 넘게 증가했습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에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 25조 2,000억 원이 연동되며 당초보다 더 늘어난 결과입니다. 정부 전망대로 내년 국세 수입이 500조 원을 넘어서면 교육교부금도 자동으로 10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내국세 연동 방식은 세수의 증감에 따라 교육 예산이 기계적으로 연동되기 때문에, 학생 수나 실제 교육 수요와 무관하게 예산이 결정됩니다. 학생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데 세수 증대에 비례해 교육 예산만 기계적으로 비대해지는 현행 구조는, 국가 전체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내국세가 적게 들어올 때는 아예 교부를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불안정성 해소를 강조하는 동시에, 반도체 초호황으로 확보되는 추가 세수를 미래 산업에도 적극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가 재정 운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입니다.
칸막이 예산의 한계와 미래대응기금 투자의 필요성
교육교부금을 둘러싼 논쟁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핵심 개념이 바로 '칸막이 예산'입니다. 교육교부금은 법적으로 시·도교육청이 담당하는 초·중등 교육 재원으로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대학 교육과 영유아 보육에는 사용할 수 없는 대표적인 칸막이 예산으로 지적받아왔습니다. 즉, 아무리 재원이 넉넉해도 법이 정한 영역 밖으로는 한 푼도 쓸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800조 원대 '슈퍼 예산'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히고, 이 돈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새로 만들어 AI·반도체·청년·지방·교육 등 4대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배경에는 바로 이 칸막이 예산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초호황 덕분에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약 50조 원 더 걷힐 전망이고, 내년에는 국세 수입이 500조 원을 넘어 추가 세수가 9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 막대한 재원을 국가 생존이 걸린 미래 먹거리 산업에 유연하게 배분하려면 칸막이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교육부 최교진 장관은 현행 20.79% 내국세 연동 체계를 유지하되, 늘어난 재원을 대학과 평생교육, 유아교육까지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교육계 내부에서도 칸막이 예산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역시 내국세 연동 방식의 유지를 주장하면서도, 시도교육청 적립기금이 4년 만에 21조 4,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급감했다는 점을 들어 '교육청 곳간이 넘친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이 정확히 지적하듯, 해법은 단순한 예산 삭감 논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칸막이를 허물어 고등·평생교육까지 아우르는 유연한 통합 재정 운용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늘봄학교, 특수교육, 다문화교육, AI 교육처럼 새롭게 필요한 교육 서비스가 계속 확대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만을 근거로 예산을 축소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행 칸막이 예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재원의 활용 범위를 대학, 평생교육, 영유아 보육으로 확대하면서 AI·반도체 등 국가 핵심 미래 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타협점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교육교부금 재정 구조조정, 시대적 요청인가 교육 후퇴인가
정부가 교육교부금을 손보려는 이유는 사실 교육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초연금 등 그동안 손대기 어려웠던 의무지출 전반을 개편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이며, 내년 예산에서만 50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교부금 개편은 국가 재정 전반의 구조조정이라는 더 큰 그림의 첫 시험대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기획예산처는 현재 명목 경제성장률, 내국세 증가율, 학령인구 변화 등을 반영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내국세의 20.79%를 자동으로 떼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 수와 경제 상황을 함께 반영해 예산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교육교부금 총액이 예년보다 줄어드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교육 예산 자체를 줄이기보다, 늘어나는 속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초과 세수는 AI·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더 쓰겠다는 계획입니다.
교육계의 반발은 거셉니다. 교원단체들은 학생 수가 줄어도 교사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 같은 고정비는 크게 줄지 않고, 특수교육·다문화교육 등 학교가 맡아야 할 역할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병력이 감소한다고 국방비를 단순히 줄이지 않듯, 학령인구 감소를 교육재정 축소의 직접적인 근거로 삼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장은 교육 예산의 고정비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비유로, 일정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계의 논리만으로는 현행 내국세 자동 연동 방식의 타당성을 온전히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교육청의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이나 현금성 지원을 두고 '재정이 과도하게 집행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에는 이미 서로 다른 방향의 교육교부금 개편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습니다. 내국세 연동 방식을 폐지하고 새로운 계산법을 도입하자는 안, 교부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안, 교육청의 재정 운용 성과를 교부금 배분에 반영하자는 안까지 다양한 방향이 제안된 상태입니다. 정부는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교육교부금 개편안을 마련한 뒤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실제 제도 변경까지는 정부·교육계·국회 간의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결국 이번 논쟁의 본질은 단순히 교육 예산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늘어날 국가 재정을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54년 동안 큰 틀을 유지해온 교육교부금 제도가 시대 변화에 맞게 바뀔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됩니다.
54년 전 학령인구 폭발기에 설계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자동 연동 구조는 저출산 고령화와 미래 산업 격변이라는 오늘날의 현실 앞에서 명백한 재설계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교육 예산의 고정비적 특성과 다변화하는 교육 수요를 존중하면서도, 칸막이를 허물고 고등·평생교육까지 아우르는 유연한 통합 재정 운용 체계로의 정교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매일경제 디그 (Digging): https://dig.mk.co.kr/Digging/Digging.html?id=10292&sort=desc